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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환
A 님  

 

맹덕은 눈을 감았다. 숨이 끊어질듯 한 고통이 깨끗이 사라졌다. 몇 번의 삶이 흘러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천하가 몇 번을 이지러지고 흩어졌다 다시 돌아갔다.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시간이 중원을 겹쳐 흘러갔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인 것 같다는 느낌이 기분 탓만은 아님을 느꼈을 때, 조조는 자신이 잊었던 이전 생의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조는 곽가를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몇 번의 죽음이 반복되었지만 그때마다 모든 것을 잃은 얼굴로 차가워져가는 시체를 부여잡고 있었다. 봉효여, 봉효여. 조조였던 것들이 우는 소리들이 겹쳐 메아리로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흐르던 시야가 내려앉았다. 익숙한 바닥이 눈에 보였다. 이곳이 어디인지, 곧 누구를 만날지 조조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추운나라로 그 남자가 떠나기 전 따뜻한 봄날.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른 채 봄의 투명한 따스함을 온몸으로 받던 그 남자가 너무도 아름답게 보이던 그 날이었다.

이윽고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닥쳐올 비극을 쫓아 만물이 달음박질하듯 세계가 곽가의 죽음을 향해 흘러감을 조조는 느끼기 시작했다. 막아야만 한다. 무언가 해야만 한다. 

“주공.”

조조는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죽어있었던 곽가가 죽간을 들고 서 있었다. 자기 주군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예의 그 건방진 모습은 조조가 보기 원하였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주공, 제게 계책이 있습니다. 오환을.....”

조조는 큰 걸음으로 성큼 걸어 곽가를 부여잡았다.

“곽가!”

“!!!”

“북으로는 절대로 가지 말게, 이건 명령일세!!”

“아니 그것을 어찌 알고, 아직 제가 말을 다 하지...”

“그게 중요한게 아냐, 봉효 자네가 중요한거야. 봉효, 자네의 계책은 불허하겠다. 그리 알아라!”

곽가가 몇 번을 청하여도 조조는 막무가내로 거절하였다. 절대로 죽게 하지 않으리라. 절대로 너를 차가운 북쪽 땅에서 피를 토하게 만들지 않으리라. 허나 이런 조조의 속내를 곽가가 알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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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한 번 더 하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조조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면서 중얼거렸다. 오환으로 가는 것만 막으면 될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망할새끼. 자기의 출진이 막히게 되니 기어이 가겠다고 그 난리를 칠게 뭐란 말이냐. 술에 잔뜩 취해 지붕위에 올라가 자신을 선봉에 두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고 난리치다 고꾸라져 죽어버리다니 정말 곽봉효 이 자식은 개새끼였다.

“그렇게 가버리면 난 어떡하라는 것이냐 봉효. 정녕 나를 죽을 만큼 괴롭게 하고 죽여 버리는 것이냐.”

조조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숨이 끊어지는 상황에 다다르는 순간 세상이 멈춘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되돌아가 처음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무슨 조화로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지는 알 턱이 없으나, 이 괴이한 조화 덕에 조조는 몇 번이고 그 망할 놈의 면상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한 가지는 명확하였다. 죽으면 다시 돌아온다. 죽으면 봉효를, 살아있는 봉효를 다시 볼 수 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 사실 하나만으로 조조는 수십 년의 외로움을 버텨냈다. 

 

아니, 점점 조조는 수십 년까지 버텨내지 못하게 되었다. 시간이 되돌아가는 기간은 점점 짧아졌다. 조조는 빠르게 생을 재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수번을 반복하자 이제 이 시간선에서의 조조는 이제 한 시각이라도 봉효의 시체를 볼 수 없었다. 더 이상 생을 버틸 수 없었다. 

 

조조는 봉효를 보러 다시 돌아가야만 했었다. 그 창백한 얼굴과 아름다운 입에서 나오는 비아냥섞인 말들을 다시 한 번 보아야만 했다. 그래, 다시 돌아가야만 하였다. 조조는 머리가 깨어져 붉은 피를 쏟아내고 있는 곽가의 앞에서 검을 꺼내었다. 

 

“내 너를 다시 보겠다. 봉효. 그때는 기필코 너를 살릴 것이다. 그래서 네놈이 늙어 뒤지는 것을 내 눈으로 볼 것이다. 봉효. 내 더 이상 죽을 때까지 너를 잃은 슬픔을 끌고 살 수 는 없을 것 같구나” 눈을 감고, 조조는 검을 목에 가까이 대었다. 깊은 숨을 삼켰다. 이제, 잠시의 아픔만 견디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주군! 이게 무슨 짓 입니까!!!”

한 남자가 다급히 뛰어나왔다. 검을 든 손을 거세게 낚아채며 악이 받힌 목소리로 그는 자신의 군주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놔라 문약! 네가 지금 누구를 막고 있는지 아느냐!!!”

“그만두십시오!!!”

몇 번의 거친 몸싸움이 일어났다. 차갑고 고요한 밤공기가 두 사람의 거친 싸움에 이지러졌다. 이윽고 손을 빠져나간 검이 푸른 달빛을 받으며 공중에 호선을 그렸다.

 

땡그렁. 땡그러렁. 찰칵. 

쇠가 울리는 소리가 지나고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얼어붙은 듯 멈췄다.

“............”

“.....주군”

“놓아라, 문약”

 그제야 순욱은 억세게 쥐었던 조조의 손을 놓았다. 옷자락이 스르륵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침묵은 한창을 이어갔다.

 

침묵을 가르는 파리한 목소리로 조조가 말을 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던 것 뿐이다”

“무엇을 말입니까. 죽는 것 말입니까? 저기 저 곽봉효와 함께요? 말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도 마십시오”

“죽는게 아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순간 순욱의 숨이 멈추었다.

“다시, 다시 봉효를 보러 가는 것이다. 문약, 너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시간을 다시 돌리려는 겁니까.”

조조가 눈을 크게 뜨고 돌아보았다.

“그걸....어떻게.......”

 

“죽음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하신겁니까”

앙당 물은 이 사이로 숨을 몰아쉬며 순욱이 말을 하였다. 그의 붉어진 눈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조맹덕!!! 당신이란 사람은!!!!” 

그의 숨이 터져 나와 급류처럼 흐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애처롭게 견뎌왔던 무언가가 짖이겨 찢어지자 온갖 것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문약은 그것들을 게워내려 하듯 몸을 웅크리며 목소리를 뱉어냈다. 감정이 끈적하게 얽힌 쉽사리 숨을 토해내지 못하여 몸을 떨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나, 매번, 몇 번이고, 곽봉효 하나 때문에 그렇게 죽었던 것 입니까!!!”

“문약....”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제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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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은 숨을 크게 쉬었다. 무수히 겹치는 시간선위에 그가 서 있었다. 억겁의 삶과 죽음의 선들이 죽은 순욱의 주변을 에워쌓았다. 그가 만든 인연과 인과들이 서로 칭칭 얽매어 있었다. 몇 번을 지웠다 다시 그린 흔적이 선들 위에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생을 마치면 도착하는 이 익숙한 공간에서 순욱은 홀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의 너머에는 자신의 주군이 있었다. 그의 붉은 망토가 크게 하늘위로 펄럭거렸다. 천하 위엄 있는 자세로 그가 서 있었다. 언제나 머릿속에 그리던, 순욱이 원하던 모습의 그가 있었다. 이 모습을 위해, 그가 한나라를 받쳐 올리고 간웅이 아닌 구국의 영웅으로 올라서는 그 모습을 위해 순욱은 몇 번이고 자신의 몸을 깨어가며 죽어왔었다. 

 

순욱은 죽을 때마다 다시 시간의 선 위로 돌아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었다. 적진에서 날아오는 수백개의 화살에 만신창이가 된 채로 돌아왔었다. 어처구니없는 모함에 휘말려 목이 잘려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때는 그토록 자신이 믿고 바라보던 사람에게 차가운 찬합을 받고 싸늘한 얼굴로 돌아왔었다. 

 

매번마다 절망하고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아예 시간선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그와 그의 주군과의 연을 완전히 소멸시켜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하였다. 그러기엔, 그러기에는 순욱은 너무도 그를.

 

그렇게 심장이 부서지는 고통을 씹어 삼키며 순욱은 수 백번의 순환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원하던 모습의 주군이 시간선 사이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토록 원하던 빛나는 사람이여. 살아서 그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죽음 너머에서도 느낄 수 있는 희미한 모습만으로도 충분하였다. 이제야 모든 것을 놓고 소멸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순욱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산산히 부서졌다.

시간의 선 위의 조조가, 스스로 목을 긋기 시작하였다. 

 

순욱은 이유를 알기위해 시간들을, 조조의 죽음들을 헤쳐보았다. 모든 조조들은 마지막 숨을 뱉으며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봉효여...봉효여....

아, 그리움이 그를 죽이고 있었다.

수 백번의 생을 순환했던 그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순욱은 고개를 떨구었다. 조조는 그 수많은 삶을 거쳐 오는 동안 자신을 저렇게 원하고 그리워 한 적이 있던가? 아니다. 순욱이 보아왔던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빛나던 눈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랗게 식어가는 것 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핏기 하나 없는 차가운 몸이 되어버렸을 때, 그 살갗의 온기보다 더 차가운 눈으로 내려 보던 조조였다. 모든 생에서 보아온 마지막 모습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차가웠다. 허나 곽가에게 조조는 어떠했는가. 더 강하게, 더 뜨겁게 그를 그리는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자신에게 모든 것의 답은 조조였다. 그러나 조조에게 모든 것의 답은 곽가였다.

순욱은 몇 번을 고쳐 풀어도 나오는 같은 답에 실소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미련한 조조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미련한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었다.

 

자 그렇다면 문약아. 이제 어쩌겠느냐. 다시 한 번 조조를 위해 살고 조조를 위해 죽을 것이냐. 순욱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질문도 답도, 모두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미련하여 한 가지 답만을 알고 있었다.

순욱은 시간을 돌렸다.

 

돌아오는 시간은 언제나 같은 순간이었다. 나의 자방이여 하고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 때, 그 시간이었다. 순욱은 그 때마다 웃음 가득한 눈으로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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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재를 얻고자 하오. 문약”

때가 왔다. 순욱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누구라도 좋소, 범죄를 저지르고 숨어살든, 얼굴이 뭐가 얽혀있든, 출신이 천하든 상관없으니 훌륭한 인재가 필요하오. 그래, 죽은 희지재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그럴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순욱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후 조조에게 어떤 의미의 사람이 될지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자신의 목 언저리까지 올라온 이름을 도로 삼키고 싶었다. 허나, 순욱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가 없는 조조 역시 있을 수 없음을 알기에.

“걸맞는 사람이 딱 하나 있습니다. 성은 곽, 이름은 가. 자는 봉효라 합니다.”

그래, 곽가 봉효. 당신의 패업을 열어주고 당신의 인생을 망칠 사람. 높이 치켜든 당신의 눈을 발 아래로 내리깔게 만들 사람. 당신이 목메어 울면서 이름을 불러낼 그 사람.

“오, 곽가... 곽가 봉효라. 이름부터 흥미롭군” 조조의 입에서 봉효의 이름이 올라왔을 때, 순욱은 이를 앙당 물었다. 그 이름을 부르던 모든 조조들의 모습이 순욱의 머릿속을 잔뜩 헤집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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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습니까. 시간을 돌렸던 것은 주공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

“그 모든 일들은 주공을 위한 것이었지요. 주공을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

“그런데 어느 순간에서도 주공은 저를 위한 적이 없더군요”

순욱은 킥, 하고 실소를 내뱉으며 말하였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조조는 달빛에 눈을 의지하여 푸르게 빛나는 검을 찾아 걸음을 걸었다. 

찰그락, 검을 집어 들며 나는 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문약, 너는 얼마나 많이 나의 삶에 간섭을 한 것이냐. 몇 번을 시간을 돌렸던 것이냐.”

 

순욱의 숨이 크게 쉬었다 내려앉았다. 간섭이라니 고작 간섭이라니.

 

“너는.....너는 나를,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나를, 나를 몇 번이고 다시 삶을 살게 만든 것이냐? 참으로 이기적이구나. 나를 다시 살게 했어. 나를.....”

조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에게, 봉효의 죽음을 몇 번이나 겪도록 했어.”

 

“봉효, 봉효, 봉효!!!!!정말 지겹습니다!!!!!!!” 순욱이 비명을 토했다.

“문약”

“그 이름을 부르면서 그 눈으로 나를 보지 마십시오!!!!”

 

순욱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조조를 피하려듯, 순욱은 뒷걸음질을 두어번 쳤다.

머리를 감싸 쥐며 몸을 웅크리며 순욱은 이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참으려 했다. 

허나, 그 억겁으로 감싼 슬픔은 계속 울컥울컥 쏟아져나왔다.

 

아, 저 눈. 봉효를 볼 때와는 너무도 다른 색의 살짝 내려간 눈.

순욱은 그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너무도 소름끼쳤다. 연민하지도 않으면서 연민을 잔뜩 담고, 자신의 아픔에 슬퍼해주지도 않을 거면서 슬픈 것처럼 보이는 눈.

그 눈은 애정하고 가련히 여김에서 오는 감정을 담지 않았다. 이루어지지 않는 한쪽을 향한 외로운 애정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느끼는 불쌍함. 마치 같은 슬픔을 가지고 있는 것 마냥 보는 동질감에서 나오는 눈. 자신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너무도 투명하게 비쳐졌다. 

순욱은 그것이 너무도 역겨울 따름이었다.

 

“너는 나를 경애하는 것이 아냐. 그냥 네가 원하는 모습의 조조를 경애하는 것일 뿐이지.”

“.......”

“그 아집으로 인해 나온 것은, 보아라 문약. 네가 원하던 조조는 나오지 않아.”

두 팔을 벌리며 조조는 말을 이었다. 

“그저 한 사람에 대한 집착이 겹겹이 쌓인 초라한 인간만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몇 번을 다시 시간을 돌려도 그것은 변하지 않을거야.”

“.........”

 

“정말이지 가증스럽지 않으냐 문약. 그래, 죽이고 싶을 정도로.”

“.........”

“나도 그렇다.”

“!”

순간의 일이었다. 조조는 자신의 가슴팍에 검을 꽂았다. 

피를 토하며 주저앉는 조조를 보는 순욱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아 또 이렇게.

 

한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집착만이 쌓인 초라한 인간의 숨이 꿀렁이는 소리를 내며 사그라들어갔다. 고꾸라진 조조의 꿈틀대는 움직임이 점점 잦아들어갔다.

 

순욱은 눈을 감았다.

그래,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끝끝내 자신을 봐주지 않고 죽은 자의 그림자만 쫓는 그 모습은 더 이상 꼴도 보기 싫다. 공로를 칭찬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주기만 하면 되었는데, 그런데 끝끝내 그러지 않는 자신의 주군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당장 모든 시간선을 지우고 자신과 조조의 연을 세상에서 지워버릴까.

그래, 그렇게 하여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그 낯짝을 보지 않는 삶을 살아도 좋을 것이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순욱은 다시 시간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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