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드마스터 문약전 ?
~최종편 한 왕조를 가슴에 ~
싱 님
때는 후한 말, 광풍 같은 세월 한 줄기 검광으로 남은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순욱, 자는 문약이며 영천군 영음현 사람이다. 영천은 천하의 기맥이 사방 팔달로 교차하는 신이한 땅으로 예로부터 기인이 많았다. 저 진시황을 얀데레 각성시킨 한비와 수염을 달고도 아녀자처럼 아름다웠다는 장량이 모두 이 고장 출신이다. 대대로 영천에 터를 잡고 산 순씨 일가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준재들을 대대로 배출하였으니, 영천 사람들은 순욱의 아버지 순곤과 그의 일곱 형제를 ‘순가 팔룡’이라 불렀다. 어린 순욱이 나이로는 삼촌뻘인 조카 순유와 함께 길에 나서면 뭇 사람들은 ‘팔룡파 다섯째 도련님’이라며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
순욱이 어릴 때 남양 사람 하옹이 그를 기이하게 여겨 이렇게 평했다.
“이 아이는 왕이 될 재능을 가졌구나.”
순욱이 겸손히 답했다.
“미욱한 제가 어찌 감히 지고의 자리에 서겠습니까. 선생께서는 감당키 어려운 말을 하지 마십시오.”
“아닐세. 자네는 분명 왕재를 갖추었네.”
하옹이 재차 강조하였다. 순욱은 쥐고 있던 붓을 벼루에 내리찍으며 벌떡 일어났다.
“아니, 제가 미욱하다는데 선생이 왜 자꾸 아니라고 하십니까.”
하옹이 보니 나무로 만든 붓은 멀쩡한데 벼루에는 점만 한 구멍이 나 있었다. 하옹은 살아서 떠나고 싶었기에 급히 평을 바꾸었다.
“이제 보니 왕이라기엔 좀 미욱한 것 같구려. 왕이 되기보다는 보좌하기에 마땅한 재능인 것 같소이다.”
순욱이 더 대꾸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하옹은 급히 자리를 물러 나왔다. 그 후 영천 땅에 왕좌지재가 있다는 말이 사해에 두루 전해졌다.
순욱이 성장하는 동안 조정은 십상시의 전횡으로 어지러워졌고 도탄에 빠진 백성은 황건적이 되어 유랑하였다. 순욱은 일찍이 영천 땅에 난이 날 것을 예상하고 사람들에게 피난을 권하였다. 그러나 고을의 노인들은 생각이 달랐다.
“자네만 머무른다면 누가 감히 영천 땅을 넘보겠는가.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주게.”
순욱은 이웃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친지와 함께 영천을 떠났다. 과연 순욱이 떠난 후 영천은 곧장 전란에 휩쓸렸다.
조정에서는 황건적을 토벌하기 위해 수많은 군웅들을 소환하였다. 그러나 황실의 세력 다툼 끝에 조정의 권력과 어린 황제는 동탁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에 반발한 군웅들이 일어나 동탁 토벌의 기치를 드니 제후 연합의 탄생이었다. 순욱은 그중 연고가 있는 기주목 한복을 찾아갔으나, 한복은 이미 원소의 간계에 속아 쫓겨난 후였다. 원소는 순욱을 손님으로 모시고 극진이 대우하였으나 순욱은 가차 없이 그를 떠났다. 순욱의 동생 순심은 원소 아래에서 일하고 있었다. 순심이 순욱을 배웅하며 물었다.
“원가는 사세삼공을 지내며 명성이 드높고 원 본초는 그중에서도 첫 손 꼽는 영웅입니다. 형은 영천의 재사들 중 일류인데 어찌 그와 함께하지 않습니까?”
순욱이 답했다.
“삼류는 아무 가지에나 몸을 의탁하고 이류는 가지를 골라 앉는다. 가지를 부러뜨리는 새 그 새가 일류이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감히 순가와 친분이 있는 자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뜻이다.”
과연 원소가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더는 순욱을 잡지 않았다. 순욱은 유유히 조조 진영으로 들어갔다.
이때 조조는 동군에 주둔하며 한참 인재를 모으고 있었다. 순욱이 동군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그날로 순욱의 거처로 찾아갔다.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하룻밤 하루낮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니 앉은 자리에서 천하의 반을 먹을 계책이 뚝딱 마련되었다. 조조가 순욱의 손을 잡고 감탄했다.
“그대야말로 나의 자방이로다!”
순욱이 웃었다.
“유방이나 되고 나서 자방을 찾으시든지요.”
조조가 삐죽댔다.
“유방이나 되어야 출사할 수 있단 말이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남의 관에 오줌이나 누는 자를 따릅니까? 저는 그보다는 고상한 주군과 일하고 싶습니다.”
다행히 조조 진영은 십팔로 제후군 중 가장 청결한 부대였다. 환관이었던 할아버지 조등이 양아들 부부와 손자에게도 궁궐 못지않은 세수 습관을 들인 덕분이었다. 마침내 순욱이 조조에게 출사하니 조조는 순욱에게 사마 직을 주고 진중에 거하게 하였다.
이후 순욱은 조조 아래에서 수많은 공을 세웠다. 조조가 서주를 침공하는 동안 습격한 여포에게서 본진을 지키기도 하고 수십만 황건군을 세 치 혀로 복속시키기도 하였다. 일찌감치 천자 옹위를 주장하여 조조가 방랑하는 천자를 구원하도록 부추기는 한편 정욱, 곽가, 순유, 진군 등등 명사들을 추천하니 조조의 큰 그림은 그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중원의 소요는 점차 정돈되어 갔다. 장강 이남의 큰 세력은 조조와 원소만이 남은 상황, 둘은 관도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으나 조조의 군세는 원소에 삼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조조는 기지를 발휘해 원소의 군량고를 기습하는 등 선전하였으나 전세는 매양 급박하였다. 이때 순욱은 후방에서 물자를 지원하고 조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난전을 거듭하던 조조는 순욱에게 편지를 보내 후퇴를 의논했다. 편지의 요지는 대략 이러했다.
- 날씨도 추워지고 보급도 떨어지고 창 칼 활도 모자란데 우리 군이 여기서 버티면 물자를 보급하는 후방이 더 힘들지 않겠소? 내가 절대 힘들어서 빠지겠다는 게 아니고 다 전략적으로다가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어디까지나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를 고려하고 있으니 되도록 긍정적으로 검토해서 솔직한 의견 부탁하오. -
순욱이 편지를 받아 일필휘지로 답하였다.
“출전하던 날 말씀하시길 배수진을 치는 각오로 나가겠다 하셨습니다. 지금 강물에 대고 후퇴하겠다 하시는 걸 보니 이전의 각오는 잊으셨나 봅니다. 돌아오시기만 하면 제가 배수진이 뭔지 제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성 주변에 깊은 해자를 파고 답서를 기다렸다. 다행히 후퇴를 묻는 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조조는 물론이거니와 수하 장수들과 잡졸까지 한 몸이 되어 죽기로 싸우니 마침내 원소는 대패하고 그 아들들은 저희끼리 다투다 뿔뿔이 흩어졌다. 조조는 오환족의 땅까지 그들을 추격해 후환을 제거했다. 이로써 중원이 평정되니 천하의 절반이 조조의 손에 떨어졌다.
이제 남은 군웅은 동오의 손권, 형주의 유표, 촉의 유장과 서량의 마등.한수 뿐이었다. 조조는 승기를 타고 형주까지 단박에 내려갔으나 적벽에서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 가로막혀 백만 대군을 잃었다. 그러나 천자가 있는 허도에서는 조조의 위엄이 이미 신하의 것을 뛰어 넘은지 오래였다. 조정의 대소신료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왕위 수여와 선양의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조조는 그런 이야기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으나 동작대를 지어 권세를 과시했다. 동작대 두 채가 나란히 지어지자 조조가 순욱에게 감상을 물었다. 순욱이 간단히 평하였다.
“새로 지어진 건물이 승상께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어인 일로 그대가 그리 순순히 칭찬하는가?”
“대가 높으나 지붕에 장식한 것은 어쨌든 참새이지 않습니까. 참새는 참새이지요.”
순욱과 조조의 물밑 갈등은 이 평으로 공공연한 일이 되었다. 뭇 사람들은 조조의 최측근인 순욱이 조조의 대의 없음을 대놓고 지적했다 여겼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참새 운운할 때 순욱의 시선이 묘하게 승상의 머리 위를 향했다고 말했다. 순욱은 8척 장신 헌헌장부로 조조보다 머리 하나는 컸다. 하후돈은 훗날 회상하기를 맹덕의 상투 끝을 내려다보지 않는 것은 암묵적 규칙이었고, 순 시중은 그 날 전까지 한 번도 그 규칙을 깬 적이 없었노라 말했다.
어쨌든 순욱과 조조의 사이는 다시는 회복되지 않았다. 건안 17년 동소 등이 조조를 국공으로 삼고 구석을 내려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기로 하고 순욱에게 자문했다. 순욱은 동소가 채 상소를 다 보여주기도 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동소가 의아하여 물었다.
“시중은 평생 승상을 보좌하여 위중할 때마다 그를 구했고 생사고락도 함께했는데, 어찌하여 이제 와서 그 앞길을 가로막으십니까?”
“나는 천하의 난을 바로잡고자 승상과 손잡은 것이지, 왕을 새로 세운 적은 없네.”
“하지만 천하의 난을 바로 잡았다면 그가 곧 천하를 가질 자격도 얻는 것 아니겠습니까?”
순욱이 웃었다.
“그럴 거면 내가 왕 하지 뭣 하러 왕좌지재를 하겠는가.”
이 일로 인하여 조조의 마음이 더욱 편치 못하였다. 어느 날 그는 순욱에게 찬합을 하나 보냈다. 찬합은 붉게 칠하고 자개로 장식해 몹시 호사스러웠는데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순욱이 칼을 들어 내리치며
“다시 승상에게 선양을 말하는 자는 이 찬합같이 되리라!”
라고 선포하니 5단 찬합이 단박에 두 쪽으로 쪼개졌다. 목격자들이 대경실색하여 과연 그의 생전에는 다시 구석의 구 자도 언급하는 이가 없었다.
불행히도 순욱이 곧 수춘에서 병사하니 그 나이 50이었다. 그가 사망한 후 조조는 곧 왕위에 올랐고 그 후계자 조비는 기어이 선양을 받아 위 왕조를 열었다. 위 왕조는 5대 45년 만에 막을 내렸으니 후세 사람들은 순욱이 10년만 더 살았다면 삼국지의 세 나라 중 하나는 위 왕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나 어쩐다나…….